[세계일보_기획보도] 서울 도시정책 수출 현장을 가다: 몽골도 '티머니' 찍고 버스 탑승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 유목민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하지만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중심가는 이러한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몽골은 1990년 민주화로 체제를 전환한 뒤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정치, 경제,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울란바토르는 인구와 자본이 대거 몰리면서 고층 빌딩과 고급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급격한 발전에는 부작용도 여럿 따르게 마련이다.
지난달 20일 울란바토르에서 맞은 첫 아침 풍경에서는 ‘교통지옥’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출근길 울란바토르 중심가는 대부분 대형주차장을 연상케 했다. 차들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고, 교차로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올 때면 너나 할 것 없이 경적을 울려 댔다. 수많은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도 고욕이었다. 울란바토르의 유일한 대중교통인 버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 대열에 끼어 있었다.
이 같은 교통체증의 원인 중 하나는 도시가 제대로 된 대중교통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130만명인 울란바토르시에 등록된 차량(자가용)은 무려 30만대에 이른다.
엥흐바트(ENKHBAT) 울란바토르시 운수국장은 “도로 확장 및 개설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지만 시내의 대중교통 수요를 1200대의 버스만이 담당하고 있는 탓에 인구 및 차량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울란바토르 교통체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서울시의 교통카드시스템이 울란바토르의 버스와 도로에 그대로 이식되면서다.
◆“서울 교통카드시스템 세계 최고”
울란바토르시 정부가 대중교통시스템 개선 사업을 추진한 것은 2009년부터다. 비단 도심 교통 체증뿐 아니라 버스 탑승객의 편의와 안전, 위생 등의 다양한 문제가 제기돼온 이유도 있었다.
울란바토르의 버스는 과거 ‘버스 안내양’이 있었던 우리나라 1960∼1980년대의 모습과 흡사하게 운전기사 외에 차장이 승객들에게 직접 버스 요금을 받는 형태로 운영돼왔다. 이러다 보니 승차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복잡한 시간에는 제대로 수금을 하지 못하는 등의 불편함이 있었다. 또 버스업체 24곳 중 민간에서 운영하는 23개 업체의 경우 출차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거나 업체들이 차량의 노후화 관리, 차내 위생 관리 등에 소홀하면서 서비스 질이 현저히 낮아지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울란바토르시 정부는 서울시와 한국스마트카드(KSCC)의 성공 사례를 주목했다. 서울에는 2004년 처음 선불카드로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결제시스템인 ‘티머니’가 도입된 뒤 지난해는 전국 어디서나 호환되는 스마트카드로 진화됐다. 또 택시, 고속버스, 주차장, 전통시장 등에서도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게 됐다. 또 준공영제로 전환되면서 서비스 품질 개선 측면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바타(BATAA) 울란바토르 재정 부시장은 “대중교통시스템이 우수한 여러 도시들을 2∼3년간 비교·분석한 결과 서울의 KSCC가 가장 우수한 사례라는 결론을 내렸고, 우리 시에 적용했을 때도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KSCC는 지난해 초부터 울란바토르 교통카드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컨설팅을 진행해왔다. 이후 현지 업체와 컨소시엄을 맺고 약 20대 1의 경쟁을 뚫고 우선사업자로 선정됐다. 지난 3월에는 울란바토르시 등과 함께 ‘울란바토르 스마트카드’(USCC) 법인을 설립했다. KCSS는 단말기 등 인프라 구축에 약 165억원(1500만달러)을 투자하고 10년간 울란바토르 교통카드 시스템의 운영권을 얻게 됐다. 지금까지 KCSS가 인프라 등으로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지만 현지에서 운영사업에까지 손을 뻗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USCC는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약 1000억원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선우 울란바토르 스마트카드 대표는 “울란바토르에서 교통카드시스템이 잘 정착한다면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교통카드 외 다양한 분야로 확대
지난달 24일 교통카드서비스시스템이 처음 시작된 뒤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시민들은 요금을 받던 버스차장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의아해하면서도 교통카드를 처음으로 단말기에 대며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애초 시민들이 새로운 버스요금 결제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일각의 우려도 불식됐다. 서비스 개시 일주일여 만에 교통카드가 3000장 이상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폭발적이진 않지만 초기 판매량치고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울란바토르시는 교통카드시스템이 정착되면 서울시의 버스 준공영제 도입은 물론 택시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분야로 서비스를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2030년을 목표로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지하철, BRT(간선급행버스) 등에도 이 교통카드를 통한 시스템을 구축해 연계해 나갈 예정이다.
바타 부시장은 “울란바토르 교통체계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사업이 시작된 것은 물론 몽골-한국 수교 25주년, 울란바토르시와 서울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지 20주년이 되는 올해 양 도시가 공동으로 투자한 첫 번째 사업이 시작됐다는 것 역시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며 “꼭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울란바토르=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기사작성일: 2015년 8월 3일
작성자 : 이정우 기자(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