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_기획보도] 서울 도시정책 수출 현장을 가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서울식 교통카드'적용 출근길이 바뀐다.
유엔이 최근 발간한 ‘세계 도시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39억명이었던 도시 거주 인구는 2050년 64억명까지 늘어나 전체 인구의 6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개발단위가 국가에서 도시로 세분화하고, 그에 따라 도시 정책의 중요성도 증가한다는 의미다. 6·25전쟁 이후 압축성장을 해온 서울시는 개발도상국의 도시정책의 모범사례로 꼽히며, 세계 25개 도시에 행정시스템을 수출하고 있다. 행정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기업들은 해외도시와 수천억원의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며 경제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난 10년간 서울시의 도시정책 수출 사례를 통해 기업의 수익 확대, 해외 일자리 창출, 도시·국가 브랜드 제고라는 도시 정책의 의미를 10회에 걸쳐 살펴본다.
서울시 교통정책과는 2003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당시 이명박 시장이 당선 전 시장 후보 시절 내건 공약 ‘대중교통시스템 개선’ 방향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진 것이다. 관계자들은 출퇴근 길 교통정체 해소를 위해 해외 각국의 사례 수집에 나섰다. 그 결과 서울시는 콜롬비아 보고타와 브라질 쿠리치바의 중앙버스전용차로, 준공영제를 벤치마킹한 ‘서울시 교통체계’를 완성, 2004년 7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1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는 ‘교통시스템 개선’ 사업자 선정 결과가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사업자로 선정된 곳은 2004년 서울시 교통개편의 주역 LG CNS였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두루 갖춘 LG CNS가 현지 업체 앙헬컴을 누른 것이다. 이 ‘역수출’ 사례는 서울시의 교통시스템과 이를 정보통신기술(ICT)로 현실에 구현한 LG CNS 기술력이 빚어낸 쾌거였다.
◆한국산 교통시스템 개선이 불러온 긍정적인 효과
해발 2640m 고산지대에 위치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는 면적은 서울시의 2배가 넘고, 인구는 1000만명에 육박하는 남미의 몇 안 되는 메가시티 중 하나다.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곳의 교통시스템은 서울과 ‘닮은꼴’이다. 서울과 동일하게 중앙차로를 달리는 트렁크버스(간선버스), 일반 도로 위의 조날버스(지선버스),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피더버스(마을버스)가 보고타를 달린다. 지하철이 없는 보고타의 트렁크버스 정류장은 서울의 지상철처럼 정류장을 들어가는 입구에서 버스카드로 결제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여기에 LG CNS가 요금징수(AFC) 및 버스운행관리시스템(BMS)을 구축하면서 유사점은 늘어났다. LG CNS가 버스 1만2000대와 정류장 40곳의 통합요금징수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정거장과 버스 안에 설치된 단말기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찍혔고, 조날버스와 트렁크버스 간 환승 할인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LG CNS가 설치한 BMS를 통해 버스의 운행간격과 정체구간, 사고 발생 등도 면밀히 모니터링된다.
서울발로 이뤄진 보고타의 교통시스템 체계화는 사회질서와 시민생활 개선으로 곧바로 연결됐다. 버스 차문이 열린 채 시민들을 빼곡히 태우고 달리던 위험천만한 장면들이 사라지고, 길거리 아무데나 정차하던 ‘마을택시’ 같던 버스들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버스를 탈 때마다 요금을 지불하던 시스템에서 환승할인으로 전환되면서 2014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 8384달러의 국가에서 시민들이 환승 때마다 1800원의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시작은 3억달러… 점점 커지는 행정수출
LG CNS는 2011년 당시 3억달러(약 3400억원)에 이 사업을 수주했다. 버스단말기·게이트 교체, 통합시스템 구축은 올해 말이면 완료되지만 향후 15년간 유지보수·시스템 운영권은 여전히 LG CNS가 쥐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 인구 증가에 따른 수익이 추가로 LG CNS에 돌아오는 것이다.
계약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2011년에 “헛고생한다”던 비아냥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LG CNS가 보고타를 전진기지로 콜롬비아 지역도시뿐 아니라 남미까지 영토를 확대하며 ‘서울의 교통시스템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타는 현재 교통개선을 위한 4차 사업과 BIS(버스 출발·도착 안내 시스템) 발주를 준비 중이다. 보고타 시교통국은 BIS와 관련해 현재 LG CNS와 사업 진행을 논의하고 있다. 콜롬비아 지방 12개 도시는 국제개발은행(IDB)에서 지원을 받아 버스 단말기를 한국산으로 바꿀 예정이다.
LG CNS는 지난해에 멕시코와 페루의 교통시스템 통합에 대한 컨설팅도 진행했다. 이들 국가가 LG CNS의 보고타에서의 성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만큼 내년 사업 발주에서 LG CNS가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이라는 시각이 높다.
루이스 베하라노 조날버스 이사는 “이전에는 버스가 차고지가 아닌 기사의 집 앞에 주차되고, 버스 요금을 기사와 흥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교통시스템이 전체적으로 개선되면서 이런 부정적인 부분이 개선됐다. 도시화 진전, 안전한 주거지역 생성 등 경제활성화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보고타=정진수 기자 jen@segye.com
“기존 사업자의 훼방, 기술로 극복했다”
장광옥 LG CNS 보고타 법인장장광옥(사진) LG CNS 콜롬비아 보고타 법인장은 서울과 보고타의 교통시스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2004년 서울, 2015년 보고타에서 각각 교통시스템이 송두리째 뒤바뀔 때마다 그 중심에서 ‘해결사’ 노릇을 해왔다.
LG CNS는 보고타 사업이 초기에 어려움을 겪자 긴급 소방수로 장 법인장을 보고타에 투입했다. 무엇보다 기존 사업자였던 앙헬컴의 훼방이 심했다. 앙헬컴은 통합을 위한 기초자료도 넘기지 않고 “LG CNS의 시스템은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루머를 퍼뜨리며 고춧가루를 뿌리려 했다.
하지만 장 법인장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이유가 뭐든 단말기 교체 후 환승이 안 되면 비난은 결국 우리에게 오겠죠. 앙헬컴을 독촉하는 것보다 허술한 이들의 카드시스템을 파악하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2004년 서울시 교통시스템 개편과정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던 장 법인장은 보고타에서 사소한 에러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각 버스 정류장 게이트 교체 작업을 하룻밤 사이에 진행했다.
앙헬컴의 사주를 받아 “시스템 통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던 호주의 한 연구소는 장 법인장이 “정확한 근거를 밝히지 않으면 앙헬컴이 아니라 연구소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 사이 버스 정류장 게이트는 하나씩 교체됐고, 버스 카드 단말기도 바뀌었다. 그러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앙헬컴은 지난 5월 “통합사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600억페소(약 30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이사회도 1명당 12억페소(약 6억원)씩 배상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보고타와 LG CNS의 신뢰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보고타시는 이제 버스 출발·도착 알림시스템(BIS) 등 교통시스템 추가 개편을 추진할 때마다 장 법인장과 협의한다. 장 법인장은 “각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통합돼야 하는 교통사업 속성상 의존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보고타=정진수 기자 jen@segye.com
“한국 시스템으로 거미줄 교통망 구축”
“보고타 교통체계는 두 번의 도약 시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2006년 도보와 자전거를 권장하는 ‘모빌리티 마스터플랜’이고, 두 번째는 (LG CNS가 참여한) 2012년 교통시스템 개선이죠.”
콜롬비아 보고타 교통국의 알렉산더 두에냐스(사진) 고문은 최근 서울시 교통시스템의 원천기술을 가진 LG CNS가 교통시스템 통합을 이루면서 ‘신(新)보고타 교통혁신’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두에냐스 고문은 “LG CNS의 통합 작업 이후 정부가 이를 통합해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 교통질서가 달라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보고타는 현재 버스시스템 통합을 시작으로 지난 60년간 미뤘던 교통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두에냐스 고문은 “현 시장이 보고타에서 근교로 연결되는 경전철과 트램, 케이블카, 지하철 등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이 모든 교통수단이 통합·연결되면 시민들이 대중교통만으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통합이 현실화하면 보고타 시내 중심에서 소아파와 파카차티바, 치파키라 등 외곽·관광지역으로 대중교통이 거미줄처럼 연결된다.두에냐스 고문은 “간선버스 확대를 위해 정부와 보고타 시가 각각 64, 36%를 부담해 80억페소(약 40억원)를 투자했다”며 “지하철과 경전철도 모두 올해 안에 입찰이 진행되고, 이 모든 걸 통합하는 프로젝트가 2년 내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업이 결국 시민들의 문화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주말에 시민들이 교외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 익스트림스포츠 등 관광산업 발달이 이뤄지고, 이것이 또다시 경제활성화로 연결되는 선순환구조가 완성된다는 의미다. 관광객 증가는 덤이다. 두에냐스 고문은 “콜롬비아 경제가 최근 안정적으로 발전하면서 재정이 뒷받침돼 교통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타=정진수 기자 jen@segye.com
기사 등록일: 2015년 7월 27일 월요일
작성자 : 정진수 기자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