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조성계획: 세운상가 건립과 재생
세운상가의 의미
1967년 1인당 국민소득이 114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라디오수리점과 사창가들이 모여 있던 서울 도심 청계천변에 연면적 205,536㎡에 이르는 대규모 상가와 17층 고급아파트로 구성된 거대한 건물군이 건설되었다. 당시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남북으로 1㎞가 이어지는 세운상가는 시민들에게 경이로운 건물이었다. 비록 국내 최초의 대형 프로젝트로 개발된 세운상가는 이후 용산전자상가, 강변 테크노마트 등 다른 상권이 생길 때마다 위기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성업 중에 있다. ‘몰카와 음란 비디오 천국’이라는 악명도 있지만 ‘전자제품 및 부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동네’라는 명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림 1> 세운상가 전경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2010),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세운상가 부지의 역사적 배경
연합군의 소이탄 공습으로 인한 시가지 피해를 막기 위하여 1937년 방공법(防空法)을 제정하는 한편 1943년에는 화재가 이웃한 건물로 옮겨 붙지 못하도록 방공(防空)상 필요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기존 건축물을 강제로 이전하거나 철거할 수 있도록 소개공지 및 소개공지대의 조성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현재 세운상가가 위치해 있는 종묘 앞에서 필동 간의 구간에 너비 50m 길이 1,180m에 이르는 소개공지대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망과 한국전쟁 등으로 이 지역에 대한 행정의 관리가 재대로 시행되지 못하면서 이재민과 월남민들이 이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게 되었으며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사창(私娼)도 점차 확산되면서 1960년대 말에는 종삼(鐘三)이라 불리는 사창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림 2> 인현동 일대
출처 : 서울시정홍보사진 (1966.8.10)
사업의 추진경위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국회의사당 건립계획이 구체화되면서 건립부지로 남산과 종묘 앞이 거론되었다. 이에 때맞춰 종묘 앞에서 필동에 이르는 지역을 무단 점유하고 있던 주민들은 계획도로의 폐지와 국유지의 불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군사정권이 수립되면서 남산 국회의사당 건립계획이 백지화되었지만 주민들의 불하요구는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무부에 의해 부지의 약 50%정도가 민간인에게 불하되었다.
한편, 불하된 토지와 무허가 판잣집이 무질서하게 들어서고 인근에는 사창들이 성행하면서 이 일대에 대한 정비방안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중구청은 ‘대한극장 앞~청계천4가간 계획도로 정비방안’을 통해서 폭 50m의 계획가로 중앙에 20m의 도로를 조성하고 양측 15m에 건물을 지어 시가지를 조성하는 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기존 상가상인들의 피해와 도심도로로서의 용량부족을 이유로 중구청의 계획안을 기각하였다.
이후 서울시는 HURPI의 미국 도시계획가 네글러(O. Negler)에게 이에 대한 대안을 의뢰하였고 그 결과, 중앙에 너비 20m의 건물지대를 설치하고 양측에 너비 15m의 도로를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네글러의 계획안은 환지가 어렵고 공지가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여 건축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 단점으로 제기되었었다.
1966년 7월, 김현옥 서울시장은 여러 안을 바탕으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건축가 김수근과 상의하여 세운상가 설계를 의뢰하는 한편, 종로구와 중구에 무허가 건물 철거를 지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건설부에는 ‘재개발지구 설정 및 일단의 불량지구 개량사업 실시인가’를 상신하였다. 그해 8월말, 자진 철거하면 상가아파트 입주권을 주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강제 철거 후 이주시키겠다는 무허가 건축물 철거 전략으로 너비 50m, 길이 893m, 총면적 44,650㎡의 부지가 확보되었다. 그리고 9월 8일 아세아상가 기공식이 있었고, 10월 21일 서울시는 세운상가 A, B, C, D지구 설계용역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와 체결하였다. 11월에는 기존의 50m계획가로의 폐지 및 불량지구개량사업지구 지정에 대한 의결사항이 중앙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세운상가의 설계
각각의 건물을 연결하는 보행자용 인공데크를 건물의 3층 레벨에 설치함으로써 종묘에서 남산을 잇는 1km의 보행자몰이 조성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그리고 지상 1층에는 도로와 주차장을 설치하여 보차분리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종로, 명동 등 주변 상권과의 연계를 위하여 종로, 청계천로, 을지로, 마른내길, 퇴계로와의 접점에 계단을 설치하고 이를 인공데크와 연결시켰다.
건물의 용도는 1~4층은 상가, 5층 이상은 아파트로 하여 주상복합건물군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5층에는 인공대지의 개념을 도입하여 공원, 어린이 놀이터, 시장 등의 오픈스페이스를 계획하였다. 또한 쾌적한 거주환경을 위해서 아파트 내부에 아트리움을 도입하고, 한 층씩 올라가면서 후퇴시키는 형태인 테라스형으로 아파트를 설계함으로써 건물의 위압감을 줄였다.
건축물의 총 용적률은 300%로 하되 도로부분을 제외한 순 용적률은 500%까지 확보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전체적인 건물군의 높이를 8층을 유지하면서 간선도로와 만나는 곳은 타워형으로 고층화하여 시각적 변화도 주었다. 한편 도시 내 도시(city in the city)의 개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보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2층과 4층에 커피숍, 식당, 병원 등을 배치하고 3층은 보행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쇼핑몰로 구성하였다. 또한 옥상에는 초등학교도 배치하여 입체적 복합기능을 가진 하나의 도시적 건축물이 되도록 계획하였다.
<그림 3> 세운상가 설계 주요 모습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2010),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세운상가의 건축
세운상가지구 재개발사업은 연건평 205,897.52㎡, 총 공사비 44억원으로 당시 민간투자사업 규모로는 사상 최대였다. 건축사업의 추진은 초기에 서울시 도시계획국 주택과 종합계획계에서 담당하였지만 재개발 사업의 붐으로 업무량이 증가하자 주택과 내에 상가주택계를 신설하고 세운상가 사업추진을 맡기었다.
1966년 10월 서울시는 건축가 김수근이 있는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와 세운상가 A-D지구 설계용역을 체결하고 시공업자를 선정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사업자로 선정된 현대, 대림, 풍전, 신풍, 삼원, 삼풍의 건설회사와 지주조합 아세아상가번영회, 청계상가주식회사는 시유지 구입자금을 나누어 부담하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 분양·임대함으로써 이윤을 확보하였다.
8개 구간으로 나누어 분할 시공된 세운상가는 1967년 10월 준공된 현대상가아파트를 시작으로 아세아상가, 대림, 청계, 삼풍, 풍전, 신성, 진양 등의 상가아파트와 호텔이 준공되면서 1968년 세운상가 전체구간이 완공되었다.
사업의 평가
1) 긍정적 성과
세운상가는 완공 후 바로 새로운 상권을 형성했다. 당시 남대문로에 있던 신세계 미도파, 종로네거리에 있던 화신, 신신 등의 백화점은 건물이 낡았고 임대방식의 소매인집단으로 운영되었던 것에 비해 세운상가는 새로운 시설과 도매값 판매로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다. 또한 상품판매를 위해 텔레비전 광고 및 판촉을 위한 상품경매권을 발행, 가격표시 정찰제 등 현대적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서울의 상업판도를 바꾸며 기대를 모았다.
세운상가 내에는 일반 판매시설 외에도 국회의원 사무실, 유흥업소, 교회, 사우나, 슈퍼마켓, 미용체조실, 실내골프장 등 당시 새로이 도입되던 기능들이 최초로 입점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1970년대 서울의 신문화를 형성하였다. 세운상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상가임대료와 땅값이 상승하였고 상가 상층부에 지어진 아파트는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었다.
2) 부정적 성과
세운상가는 당초 구상했던 것과 달리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서 실제 완공된 건물과 계획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 건물의 3층 레벨에 보행자용 인공데크를 만들어 종묘~퇴계로 사이에 보행전용의 쇼핑몰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경사가 급한 접근계단과 건물사이의 인공데크 단절로 의도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지상을 자동차 전용공간으로 하고 3층을 보행자 도로로 계획하겠다는 보차분리는 이루어지지지 않았다. 지상에는 자동차와 보행자가 섞이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한편, 상업시설과 주거, 업무기능을 구분하고 연결시켜주는 개방공간을 5층에 배치하는 인공대지의 개념도 실현되지 못하였다. 도시 내 도시라는 개념으로 도입될 예정이었던 동사무소, 파출소, 학교, 은행, 옥상정원 등의 공공·편익시설이 배제되고, 주거기능 활성화를 위해 제시된 아트리움과 테라스형 계획도 실시설계단계에서 일부 변경되었다.
세운상가 건물군에 대한 비판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주변지역과는 이질적인 건물의 규모와 방향성으로 인하여 위압감을 주는 도심경관상의 문제, 북한산~종묘~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의 단절문제, 그리고 서울시의 동서방향 교통흐름을 고려하지 못하고 남북방향으로 보차분리를 시도한 데에 따른 문제 등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서울 도시축의 흐름을 단절하고 세운상가 양쪽 블록의 기능연계를 막아 이웃블록들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주요 갈등과 해결방안
세운상가의 기능쇠퇴 및 재개발 논의
1) 기능쇠퇴
1970년대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화점, 롯데백화점의 개관으로 서울의 중심상권이 다시 명동으로 옮겨지면서 세운상가의 상권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들 백화점들이 직영체계의 고급상가가 되면서 잡화점식의 일반상가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더해 전자제품과 음향기기, 악기 등으로 특화되어있던 전기·전자 업종이 도심부적격 업종으로 지정되었고 도심외곽 이주정책에 따라 용산전자상가로 강제 이전되면서 세운상가 상권은 급격히 몰락하였다.
세운상가 아파트 또한 상권의 약화로 거주계층이 변화하면서 점차 영세한 회사의 사무실로 변하였다. 1970년대 초부터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한강맨션과 함께 한강변에 대형 고급아파트가 건립되었고 세운상가의 거주민들이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주거용도가 업무용도로 점차 전환되면서 현재 이 지역의 주거기능은 크게 쇠퇴하였다.
2) 기능쇠퇴의 해결안으로 재개발 계획 수립
1979년 이래로 이 지역에는 세 번의 재개발 관련 계획이 수립되었다. 1979년 ‘도심부재개발사업계획연구: 세운상가구역’이 수립되었으나 지적고시 미이행으로 구역지정이 무효화되었다. 이후 1984년 세운상가 동측일대에 대한 ‘세운상가 구역 재개발 사업계획’이 수립되었고 1988년 세운상가 서측과 동측을 추가로 포함하여 ‘세운상가구역, 세운상가2,3구역 재개발 사업계획’이 수립되었다.
-도심부재개발사업계획연구: 세운상가 구역(1979)
쇠퇴된 세운상가 및 그 주변지역의 재개발을 통하여 도심부의 CBD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계획안이 제안되었다. 도심 부적격기능인 전기·전자 업종을 도심외곽으로 내보내고 업무 및 문화관련 시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여 평면적 시가지를 입체적으로 개조하고자 하였다. 또한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의 가로를 따라 녹지대를 설치하고 보행로를 신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도로체계도 대폭 개선하고자 하였다. 세운상가 동측에 노폭 30m의 간선도로를 설치하여 남산1호터널과의 연결을 꾀하였고 서측에는 노폭 10m의 보행로와 녹지, 쇼핑몰을 조성하는 한편 기존의 인공데크 밑의 도로는 주차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이와 더불어 주변지역과의 연계강화를 위하여 세운상가 주변지역의 개발 시, 연결데크를 통하여 세운상가와 상호 연결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업의 시행을 위해서는 필지규모가 영세하여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얻기가 힘든 이 지역의 여건을 감안하여야 하였다. 이에 영세필지의 토지소유자가 개발주체가 될 수 있는 소획지분할계획안과 블록별 통합개발을 유도하면서도 소유자 합의가 쉽지 않을 시 각 블록 내에서 소필지형으로 건축할 수 있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세운상가 구역 재개발 사업계획(1984)
도심부재개발사업계획연구: 세운상가 구역(1979)에서 제시되었던 계획안이 지적고시 미이행으로 무효화되면서 1982년 건설부는 다시 세운상가 동측일대만을 대상으로 재개발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안에서는 데크부분에 조경계획을 하여 녹지축을 보완하는 동시에 휴게공간을 조성하여 보행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상가의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공용주차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건물의 내부도 전면 정비하여 오피스텔과 레지던스호텔 등으로 변하는 도심의 주거형태의 변화를 반영하여 계획하였다.
한편, 세운상가 동측 30m의 남북간 간선도로도 지구접근로로 변경하고 기능을 축소하였다. 대신 도시공원과 보행로를 확충하여 광역녹지축을 보완하게 하였다. 남북 간선도로의 기능은 현재의 배오개길로 이전하여 남산1호터널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영세소유자의 사업참여 유도, 대규모 개발과 이를 위한 재원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전면적인 재개발 방식보다는 토지구획정리방법을 통하여 사업을 추진하되 부분적으로 전면매수방법을 도입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세운상가 구역, 세운상가 2,3구역 재개발사업계획(1988)’
1987년 세운상가 서측이 새롭게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기존의 계획안을 재조정하고 새로운 구역을 포함하는 재개발사업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안에서는 세운상가는 유지하면서 그 주변지역에 대한 기능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개발 규모 및 밀도는 세운상가와 동일하게 중규모(대지 1,000평 이내), 중층(5-10층)시설이 주가 되도록 개발하였다.
동서 간선도로와 세운상가 건물군을 조화시키기 위해 폭 25미터 도로변의 건축선을 후퇴시켰고, 공개녹지를 설치하여 녹지축의 강화를 유도하였다. 각 가구(街區) 내부에는 공원을 배치하고, 공원 지하를 공용주차장으로 계획하였다. 세운상가 데크는 보행자전용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경처리를 하고 주변 사업지구와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이전 계획안에서 제안되었으나 시행되지 않고 있던 세운상가 양측 도로를 25미터 중로로 변경하였고 일방통행으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사업의 시행을 위해서는 필지규모가 영세하고 다수의 토지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여건을 감안하여 재개발조합을 구성하고 토지구획정리방법을 발전시킨 전면개발방식을 추진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표 1>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관련 계획 수립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2010),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그림 4>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관련 계획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2010),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세운 재정비 촉진계획의 수립을 둘러싼 갈등
1) 세운재정비촉진계획 수립의 배경과 내용
세운지구의 기능쇠퇴에 대한 해결안으로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실제 재개발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소규모 필지들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지권자의 수가 많아서 합의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재개발시도가 무산되어오면서 세운지구의 토지는 세분화되었고 지가는 상승했으며, 시설은 점점 더 낙후되어갔다. 이후 2003년에 이르러 청계천 복원 사업과 맞물리면서 세운상가군을 철거하여 녹지축을 조성하고 그 주변지역을 재개발하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시는 2006년 세운지구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고 2015년까지 세운상가 철거계획안을 발표하였다. 이와 더불어 초고층 건물 신축 및 종묘와 남산을 잇는 1㎞의 공원녹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하였다. 세운상가 및 그 주변지역을 연계한 대규모 개발을 통하여 광역남북녹지축을 비롯한 도시기반시설을 확보하는 한편 순환재개발방식의 도입으로 주민과 함께 사업추진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재개발 계획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였다. 세계문화유산보전을 위한 국제협의회(이하 ICOMOS)는 종묘의 문화적 경관 보호를 위해 계획이 변경되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이에 서울시 및 중구청은 종묘에 면한 세운4구역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이들과의 갈등을 해소하였다. 한편 중구청은 초고층 건물의 높이제한문제로 서울시와 마찰을 빚었다. 중구청과의 갈등은 서울시가 향후 이 지역에 대한 높이제한규제를 검토하고 필요하면 완화하여 주겠다는 약속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였다. 세운지구 내 학교신설을 위한 부지확보 문제로 서울시와 교육청간의 갈등도 발생하였다. 결국 덕수중학교 부지 내에 초등학교를 추가로 신설하는 방안을 교육청이 수용함으로써 갈등이 해결되었다. 이와 같은 이해관계자간의 갈등해결의 과정을 거쳐 2009년 3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수립되었다.
2) ICOMOS와의 갈등과 해결내용 : 종묘
세운재정비촉진지구가 지정되자 ICOMOS-Korea는 세운상가 일대를 너무 높이 개발할 경우 종묘의 문화적 경관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가 ‘위험에 처한 문화재’ 등급으로 등록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ICOMOS 본부에 자문을 구하였고 ICOMOS는 종묘와 인접한 세운4구역에 높이, 용도, 경관 등의 건축계획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이후 3차례의 자문회의를 통하여 계획안의 조정이 이루어졌다. 종로구는 종묘와 관련한 건축물의 높이제한으로 인해 건축계획의 확정이 지연되고 있어 토지 소유자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사업을 조속히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존안을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ICOMOS-Korea는 건축물의 높이완화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되 녹지축 조성을 위하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서 제시된 최고높이까지만을 허용할 것을 서울시와 중구청에 요구하였다. 이와 더불어 건물 상층부 일부를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중구청은 이와 같은 내용을 받아들여 건축물의 높이를 조정하였고 높이조정으로 부족해진 업무시설의 면적을 충당하기 위하여 블록내부의 주거용 건축물을 업무용도로 변경하였다.
3) 중구청과의 갈등과 해결내용 : 높이계획
세운재정비촉진지구가 지정되는 시기에 중구청은 ‘세운상가 2,3,5구역 도시환경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이 계획안에서는 높이규제로 인하여 도심부의 수직공간 활용이 제한되어 비효율적인 토지이용이 초래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이에 대한 해결안으로 초고층 건축물의 건립을 제안하였다.
중구청은 이러한 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하고 ‘도심재생과 초고층건축의 역할’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초고층 건물의 건립 필요성을 홍보하였다. 이와 함께 초고층 건축물 건립을 통해 대규모 오픈스페이스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도 내세웠다. 그러나 서울시는 꾸준히 제기되는 중구청의 초고층계획안에 대해 현행 높이기준을 준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구청이 독자적으로 초고층 아이디어 공모전과 초고층 건물 홍보 언론보도를 비롯해 ‘중구지역건물높이 규제해제요구 민간서명추진위원회’ 서명운동을 추진하면서 서울시와의 갈등은 고조되었다.
이후 서울시는 향후 ‘도시기본계획 및 도심부 발전계획 재정비’에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에 초고층 건축이 가능할 수 있도록 높이제한 완화를 적극 검토하고, 이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반영한다는 내용으로 중구청을 설득하였고 중구청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양자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4) 교육청과의 갈등과 해결내용 : 학교 확보
중부교육청과 서울시 간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학교 확보에 관한 논의가 4차례 이루어졌다. 서울시는 중부교육청에 덕수중학교의 부지정형화와 초·중학교의 복합화를 요청하였다. 이에 중부교육청은 부지정형화는 받아들이지만 초등학교는 별도의 부지에 신설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불가피하게 덕수중에 복합화할 경우에는 운동장 등을 고려하여 약 5,000㎡의 교지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요구하였다.
이에 서울시는 관련법상 교육감이 학교부지 매수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음을 설명하였고, 신설비용은 교육인적자원부의 계획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부담해야함을 밝혔다. 또한 대상지역은 서울 도심으로 토지가격이 3.3㎡당 약 5천만원~1억원에 달하여 막대한 예산이 소요됨으로써 개발자가 기부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함을 밝히면서 실현가능한 학교설치계획의 수립을 요청하였다.
이후 서울시와 중부교육청과의 총 4차례의 협의를 거쳐 학교건립에 관한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덕수중학교의 부지를 정형화하고 부지 내에 초등학교를 추가로 건립하는 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되었다.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의 변경과 향후 추진계획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수립되었지만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세운4구역 건축물의 높이가 문화재청의 심의로 하향조정 되었고 당시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개발사업의 리스크 증대로 사업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촉진지구 내부적으로 세운녹지축 조성에 따른 주민부담이 가중되고 있었고, 세운상가군과 주변구역간의 사업여건이 달라 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었다. 또한 세운상가의 건축문화적 가치와 지역의 역사적 가치의 보존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의 변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는 종로구, 중구, SH공사 등 관계기관과 분야별 전문가 T/F팀을 구성하여 14회의 논의과정을 거쳤다. 또한 세운지구 재정비에 관한 심포지엄과 주민 면담(15회)을 진행하면서 촉진계획의 변경 필요성과 개발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나갔다. 마침내 서울시는 2009년 수립한 기존 계획안을 폐기하였고, 2013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발표하였다. 이후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 결정 고시되었다.
1) 변경안의 주요내용
변경안은 세운지구를 창조문화산업의 중심지로 조성한다는 비전아래, 도심산업을 발전적으로 재편하고 도심의 역사문화자원과 조화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한편 지역의 커뮤니티를 보전한다는 세 가지 정비방향을 제시하였다. 변경안의 핵심사항은 세운상가를 전면철거 후 공원으로 조성하려던 기존의 계획안을 존치하는 방향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세운상가 및 주변구역의 통합개발에서 오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주변 정비구역에서 분리하여 주민의사에 따라 리모델링을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다.
한편 종로와 퇴계로에 면한 구역에 신축되는 건축물의 높이는 종묘 문화재와 남산의 자연 경관을 고려해 기존 계획안에서 제시된 90m에서 70m이하로 하향 조정되었으며 가로활성화가 필요하거나 용적률 확보가 어려운 구역에 한해 건폐율은 60%에서 최고 80%까지 완화하였다. 용적률은 도심부 상업지역 600%를 기준으로 하되 도심산업 활성화구역은 100%, 용도전환 유도가 필요한 구역은 200%의 인센티브를 부여하였다. 한편 초등학교 신설 계획은 폐지하여 현 덕수중학교를 존치하는 방향으로 결정하였다.
2) 추진계획 및 운영방안
서울시는 향후 주민, 전문가, 공공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세운상가 건물군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고, 세운상가군의 바람직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속적인 주민 워크숍과 ‘도시재생 관점에서 본 세운상가군 재조명을 위한 국제심포지엄(2013년 12월)’을 개최를 통하여 지역주민을 포함한 서울시민, 관계전문가와의 공감대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리모델링의 가이드라인, 공공지원 방안 등 구체적 실행계획과 추진전략, 추진시기도 주민과의 협의를 거쳐 추진할 계획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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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92003), 우리도시예찬,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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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2010),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서울시(2014.3.27),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 결정 변경
서울시 보도자료, 2013.6.26. '세운상가, 주변 정비구역에서 분리·보존, 주변구역 소규모 분할 개발'
서울시 보도자료, 2013.11.13. '도시재생 관점에서 본 세운상가군 재조명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국제뉴스, 2013.3.4.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개발 속도낸다', www.gukjenews.com
한국경제, 2013.6.25. '34년 만에 세운상가 리모델링', www.hankyung.com
한국경제, 2013.6.26. '세운상가 역사는 1970년대 전기·전자상가의 메카, 용산 등장에 빛 잃어', www.hankyung.com
한국일보, 2014.6.27, '서울시 입맛대로 오락가락 재개발에 세운상가 만신창이', ww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