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서울시의 도심부 관리정책 변화

등록일 2015-05-08 분류 도시계획 글쓴이 scaadmin
작성자
민현석 연구위원
소속
서울 연구원
작성일
2015-04-16
최종수정일
2017-06-17

서울 도심부의 물리적 역사 유산

도심부의 기본적인 도시구조는 1392년 조선왕조가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현재까지 커다란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로 인하여 서울의 도심부는 영세하고 불규칙적인 필지, 좁은 골목길, 작은 건축물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마을로 구성되었다.

서울 도심부의 도시골격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되기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 상공업이 발달하고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면서부터이다. 공공건물, 백화점, 금융기관 등 각종 대형양식의 건축물들이 부지규모가 큰 옛 조선시대의 관아 및 사대부 집터에 들어서고 태평로, 율곡로 등 새로운 간선도로가 격자형 패턴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간선도로 내부에는 여전히 좁은 골목과 영세한 필지로 채워진 한옥들이 구성된 도심부의 전통적인 도시구조가 대부분 그대로 잔존해있다.

 

서울의 도심부 구조는 한국전쟁으로 다시 한 번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지역을 중심으로 전후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루어졌으며 이 사업을 통하여 영세하고 불규칙적인 필지가 정형화되고 좁은 골목길이 넓혀졌으며 공공시설부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전쟁의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사업 해당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조선시대의 옛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1950년대와 1960년대, 도심부의 많은 부분이 서울로 이주한 빈민층이 불법적으로 조성한 건축물로 점거되기 시작했고 당시 서울 도심부의 상태는 무질서한 슬럼시가지의 모습으로 비좁은 도로에 노후화한 건물이 무질서하게 밀집되어 있었고, 기초적인 위생시설 및 공공시설이 결여된 상태였다.

1067년 고려시대를 거쳐 1392년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수도 천도 이후 현재의 서울까지 커다란 변화 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서울 도심역사 변천사>

1960년대 도심부 관리정책: 도심부 재개발 필요성 인식

도심부의 재개발이 정책적 관심을 끈 것은 한국동란 이후 사회적 혼란이 안정을 찾아가고, 국가적인 경제발전의 노력이 시작되고 있던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서울시는 서울이 도시로서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서 도심부에 새로운 현대식 건물과 기반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증가하였다. 이 당시 서울시는 도심부의 토지소유권이 영세하게 분할되어 있기 때문에 통합개발이 어렵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실효성 있는 도심재개발을 위해 개별건물의 신축을 넘어서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도심부 재개발의 필요성에 따라 1965년 도시계획법 시행령이 개정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재개발지구” 정책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재개발지구는 재개발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적 범역을 지정한 것이었을 뿐, 영세하게 세분된 토지소유권을 하나의 개발단위로 통합할 수 있는 사업수단은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시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세운상가 지역을 제외한 민간이 토지소유권을 갖는 지역에 대해서는 이후 5년간 재개발지구 지정이 되지 못하였다.

이후 “조국 근대화”라는 국가발전 정책에 따라 도심부의 현대적인 개조가 중요한 추진시책으로 고려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시정의 기본방향 또한 “도심재개발”로 설정되었다. 당시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은 기존의 도심부를 과감히 재개발하여 충분한 공간이 확보된 초고층의 시가지로 만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단순한 지구지정 이외에 실질적인 사업수단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서울시 공무원은 집단적인 철거재개발을 통해 도심을 재개발하는 일본의 선진기법을 배워왔다. 특히 영세하게 분할된 토지소유권을 통합하여 하나의 건물로 개발하고 그 지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는 입체환지라는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도심재개발 제도를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도심부 관리정책: 도시재개발법의 제정과 재개발 촉진 노력

1971년 도시계획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도시재개발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였다. 이 법의 개정으로 도심재개발은 단순히 토지이용계획상의 지구가 아닌 “도시계획사업”으로 규정되었고, 재개발사업의 시행요건, 시행계획, 관리처분계획, 청산 등에 관한 절차들이 처음으로 법으로 마련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도심재개발은 사업수단으로서의 실천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73년에서 1976년에 이르기까지 소공, 을지로1가, 서울역-서대문, 광화문 및 신문로 등 12개의 도심부 핵심지역 일대에 도심재개발구역이 지정되었다.

그러나 도심재개발구역의 지정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토지합병 절차와 막대한 자본 투입에 의한 문제로 민간투자자에 의한 재개발사업은 활발히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에 일정기간동안 민간투자자에 의한 재개발사업이 완료되지 않는 지역에 대하여 서울시가 직접 개발을 담당하거나 제3자에게 개발을 의뢰할 수 있는 “특정정비가구” 지정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에 더하여 도심재개발 사업지구에 포함된 특정대상지역에 재산세, 거래세 및 취득세 등 세제감면의 인센티브가 부여될 수 있도록 하는 “특정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1972)”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도심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이와 같은 인위적인 촉진책에도 불구하고 도심부에서의 재개발사업은 여전히 미진한 상태였다. 이에 보다 체계적인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도시재개발법(1976)이 제정되었고 이로써 도심재개발제도는 독립적인 법적장치를 갖추게 되었다. 도시기능의 현대화 및 토지의 효율적인 고도이용을 위하여 제정된 도시재개발법을 통하여 과도한 기능집중으로 토지의 고도이용이 요청되는 지역에 재개발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재개발구역지정 요건을 설정하였다. 또한 재개발사업계획의 입안 및 결정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되, 시행은 민간부분이 담당하는 것을 기본골격으로 하는 사업의 기본절차도 마련하였다. 이와 더불어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서 도심재개발사업을 시행할 경우 도심재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장기적인 도시계획에 맞추어 수행할 것을 규정하였다.

 

도시계획법에 따라 1977년 11월 서울시도 재개발사업조례를 제정하는 한편 수도서울의 중추도심기능회복, 장래의 도시정비를 고려한 시설수요의 공급 및 질적 향상, 시민의 정서순화를 위한 도시공간의 조성이라는 목적으로 도심재개발 기본계획(1978)을 수립하였다. 도심재개발 기본계획에서는 노후건물 밀집지역, 영세업소 집중지역, 시설 및 절대공간 미비지역, 부적격기능 이전지역, 주거 및 위락의 혼재지역, 미관저해기능 입지지역 등을 불량지역으로 지정함으로써 도심부 대부분의 전통적인 도시구조를 철거 혹은 수복을 통해 재개발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따라 역사성이 강한 인사동, 종묘주변, 효제동 등 일부지역에 대한 보존 또는 소규모 수복정비계획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지역에 대해서 단계적인 철거재개발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시작한 도심재개발 정책은 당시 북한과 극심한 긴장관계로 인하여 1979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부는 북한의 포격 사정거리 내에 있는 서울로 개발이 집중되는 현상이 국가 안보상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강남개발을 통한 인구분산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특히 사대문내 지역에 있는 건축물의 고도와 용적률에 강력한 규제가 가해졌다. 도심재개발의 시행요건도 강화되어 사업시행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재개발지구 내 토지면적 확보기준과 토지소유자 및 건축물소유자의 동의율 기준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대지주가 사업시행자가 되어 나머지 토지를 일괄매수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토지소유자 전원이 참여하여 공동으로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이 변경되었다. 이에 더해 도심재개발 시 발생하는 철거민에 대한 사전수용대책도 필수적인 요건으로 제시되었다.

1980년대 도심부 관리정책: 국제행사에 대비한 도심재개발 추진주요성과

1970년대의 활발한 도심재개발 구역지정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도심부 개발억제정책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 도심재개발사업은 크게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도심재개발 정책은 또 다시 적극적인 활성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두 차례의 커다란 국제행사를 통하여 서울의 현대화된 면모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되면서 단시간 내에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도심재개발사업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도심재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주요간선도로를 따라 위치하고 있는 약 60만㎡에 이르는 124개 지구를 중점정비대상으로 선정하였다.

 

한편 도심재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정부는 1982년 도시재개발법을 개정하였다. 개정된 도시재개발법으로 공익사업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적용되었던 토지수용권이 민간 사업시행자에게도 부여되었다. 이는 민간사업시행자가 재개발사업을 시행할 경우 일부 토지소유주들의 반대로 사업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편 제3개발자에 의한 사업시행요건에서 사업예치금 규정이 조정되면서 제3개발자의 사업부담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83년 처음으로 3개 지구(을지로1가5지구, 무교2지구, 서린12지구)에서 제3개발자가 사업시행자로 사업인가를 받게 되었다. 또한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토지공사(당시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대한주택공사와 더불어 도심재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가 되는 것도 가능해졌다.

 

정부의 완화정책에 이어 1983년 2월 서울시 역시 용적률 완화와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도심재개발 촉진방안을 발표하였다. 기존 최대 670%였던 사대문내 상업지역에서의 도심재개발사업의 용적률은 최대 1,000%까지 완화되었으며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등이 재개발구역에서 면제되었다.

이와 같은 법·제도상의 완화조치를 통하여 도심재개발사업의 수익성이 담보되고 1980년대 초반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으로 도심의 지가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하면서 대기업의 도심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3저 현상(원유가격 하락, 국제금리 하락, 엔고/원저)에 힘입은 한국경제의 엄청난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울의 업무용 공간 수요가 폭등하면서 도심재개발이 크게 촉진되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4년 동안 무려 76개 지구에서 도심재개발사업의 시행인가가 이루어졌고, 활성화 양상은 88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1990년대 도심부 관리정책: 기존의 도심재개발방식에 대한 비판과 반성

1988년 올림픽행사가 끝이 나자 도심재개발은 이전만큼 강한 정책적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더 이상 서울시의 시책에서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도심재개발구역의 지정도 크게 늘지 않았다. 다만 1990년대에 들어서는 도심부의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이에 관련된 몇 가지 정책의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기존의 전통적인 도시조직과 건물을 철거하는 전면철거 재개발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전면철거로 인하여 도심부의 역사성이 훼손되고 고층고밀 개발이 야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정부는 1990년 7월 도시재개발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수복재개발과 보전재개발 방식을 도입하였다. 기존의 도시조직을 유지하고 가치가 있는 전통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새로운 재개발 방식을 통하여 지역을 재활성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법률상 새로이 도입된 수복재개발과 보전재개발 방식은 도심재개발사업에 실제로 적용되지 못하였다. 새로운 재개발방식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고, 도심재개발을 민간재정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사업 타당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20년 동안 도심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도심주거가 급격히 감소하고 야간공동화가 초래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서울시는 이에 대응하여 1990년 4월 재개발 신축건물에 주거공간을 확보할 경우 용적률 완화의 혜택을 주는 도심공동화 방지 방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도심재개발 기본계획을 변경하여 건물의 연면적 1/3이상을 주거공간으로 확보해야하는 “주거복합의무화구역”과 주거기능을 도입할 경우 인센티브를 받는 “주거복합권장구역”을 지정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방안이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당시 최대 허용 용적률을 1,000%에서 670%로 줄이면서 주거기능 도입에 따른 인센티브 효과가 미미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도심부에 주거복합건물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주거도입 장려방안은 오히려 억제책으로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서울시는 1996년 도심재개발 기본계획을 변경하여 주거복합의무화구역과 주거복합권장구역의 구분을 폐지하고 사대문내 전 지역을 주거복합유도지역으로 설정하여 도심재개발 시 자발적인 주거도입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2000년대 도심부 관리정책: 정체성 회복을 위한 세심한 도심부 관리

2000년 이후 도심부 관리정책은 철거재개발을 통한 도심부의 현대화라는 기존의 개발중심 논리에서 탈피하는 한편 도심부 고유의 특성과 매력을 지켜나가면서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적응한다는 관리중심의 정책으로 변모하였다.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도심부의 개발을 일괄적으로 규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규제완화를 통하여 민간투자를 증진하는 한편 공공투자에 의한 환경정비를 통하여 도심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도심부 관리 정책의 변화는 2000년 이후 수립된 몇 가지 도심부 관련 계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 최초의 도심부 계획으로서, 사업계획이나 개발계획이 아닌 도심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책지침의 성격을 가진 도심부 관리 기본계획(2000)이 수립되었다. 도심부의 정체성 보전과 경제적 번영을 위한 전략수단으로 공공투자를 통한 지역정비와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투자의 촉진을 강조하였다.

 

한편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의 완공을 앞두고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계획(2004)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은 청계천 복원과 연계하여 도심부 전체, 특히 청계천 주변지역에 대한 장기비전과 개발원칙을 제시하였다. 적극적인 공공투자를 통하여 도심의 역사, 문화,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민간의 개발에너지를 활용한 도심활성화를 도모함으로써 개발과 보존의 조화라는 도심부 관리기본계획(2000)의 정책적 기조를 유지하였다.

 

두 차례의 도심부 발전계획에서 제시되었던 정책의 틀과 도심부의 여건변화를 반영하여 실행계획 성격의 도심재창조 종합계획(2007)이 수립되었다. 역사문화축, 관광문화축, 녹지문화축, 복합문화축의 남북 4대축을 제안하는 한편 축별로 다양한 핵심사업들을 구상하였다. 또한 남산으로의 접근성 개선을 위한 열린 남산만들기 사업을 계획하였다.

한편 시민을 비롯한 다양한 계획주체가 실제로 계획에 참여하여 계획의 실효성을 제고하자는 요구가 커짐에 따라 시민과 전문가의 합의과정을 거친 역사도심관리기본계획(2014)이 수립되었다. 역사도심관리기본계획은 역사도심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종합계획으로 한양도성 전 범위의 개발·보전·재생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이슈별 전략계획 및 공간지침을 마련하였다.

상단은 광화문 광장, 하단은 청계청
1911년 서울역과 광화문 간선도로 건설 이후 2009년까지 이어져 온 서울시 도심부 관리의 연혁표로써 주요 도심부 관리에는 1974년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였고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였으며 1988년 88올림픽이 개최하였다. 2009년에 광화문 광장이 개장하였다.

참고문헌

2001,“서울 20세기 공간변천사”, 서울연구원
2000,“도심부 관리 기본계획”, 서울시
2004,“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계획”, 서울시
2007,“도심재창조 종합계획”, 서울시
2014,“역사도심관리기본계획”,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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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역사도심 기본계획 발표


서울시 역사도심관리 기본계획 기자설명회_라이브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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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재생본부  /  02-2133-8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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