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_기획보도] 서울 도시정책 수출 현장을 가다 : 집약형 임대주택 벤치마킹… 대만 '살인적' 집값 손본다
“타이베이에서 집을 사려면 16년치 연봉을 모아야 합니다. 집 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대만 타이베이시 린저우민 도시발전국장은 타이베이의 집값 상황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타이베이 집값의 PIR(소득대비 배율·Price to Incom Ratio)가 약 16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평균 소득 대비 집값은 서울이 8.8배(전국 4.8배), 미국 뉴욕 6.1배, 일본 도쿄 4.9배 등이었다. 세계 주택시장 조사연구기관인 퍼포먼스 어번 플래닝이 제시하는 ‘집 구입이 가능한’ 수준의 PIR는 3.0 이하이고 유엔 인간정주위원회(HABITAT)가 권고하는 적정 PIR 수준이 3.0∼5.0이다. 타이베이의 집값에 대해 ‘살인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오랜 기간 높은 집값으로 신음하던 대만과 타이베이 시민들은 임대주택과 관련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정치권과 정부도 관련 공약과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주거복지’에 눈을 돌리고 있는 시점이다.
◆서울에 주목하다
타이베이의 자가 비율은 81%이고, 월세가 11%, 기숙사와 기타가 나머지이다. 언뜻 보면 자가 비율이 높아 주택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는 타이베이에 주소를 등록한 시민의 기준이다. 타이베이시 전체 인구가 약 270만명이고 시 호적이 아닌 거주민이 50만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실제 월세의 비중은 훨씬 큰 셈이다.
또 살 만한 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소득의 25% 이상을 월세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월급쟁이들의 부담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황리링 대만대 교수는 “대만은 1990년 무렵까지 사회주택(공공주택)을 대량으로 보급했지만 당시에는 임대주택이 거의 없이 분양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공공주택이 보급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가 주목하는 서울시의 임대주택 비율은 6%(16만호) 내외로 아직 충분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타이베이의 임대주택 비율은 현재 계획 중인 것들을 모두 합쳐도 1%가 되지 않는다. 임대주택 자체가 적을 뿐만 아니라 관련 정책, 제도 또한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유은영 중국과학기술대 교수는 “타이베이는 1980년대 후반에 집값을 비롯한 전체 물가가 폭등했는데, 현재에도 부동산 시세가 계속 오르고 있다”며 “그러나 세금이 낮다 보니 집이 팔리지 않아도 그대로 둬 공실률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은 올해 취임과 동시에 임기 4년 동안 공공임대주택 2만가구 보급과 관련기관 설립 등을 약속했다. 재임에 성공할 경우 5만가구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전임 시장이 25년 만에 4만5000가구를 내세웠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히 발전한 셈이다.
이를 위해 타이베이시가 중점적으로 살펴본 것은 서울시와 SH공사의 사례였다. 여러 부분 중 단기간에 관련 정책과 추진 기구를 만들었다는 점에 가장 주목했다.
린저우민 국장은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의 임대주택 정책을 살펴볼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점진적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십 년에 걸쳐 정책을 만들었다”며 “수년 내에 임대주택을 마련하고 그에 앞서 관련 기관과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단기간, 집약적으로 달성한 서울시의 노하우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도시·시민 변화에 맞는 임대주택 정책 필요
타이베이시는 서울시와 지난 4월 공공임대주택사업 협력교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임대주택 건설 외에도 다양한 부분에서 타이베이시와 서울시의 공조가 확대될 전망이다. 보증금을 높여 월세를 상대적으로 낮춘 부분이나 주거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운영 노하우 등 주거복지 실현을 위해 고려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건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지역민의 반발에 대한 대책도 고심 중이다. 타이베이시는 모든 공공주택의 지상 3층까지 마을주민센터, 노인·장애인복지센터, 어린이집 등 다양한 주민복지시설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임대주택 정책은 인구구조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1인 가구의 증가가 대표적이다. 청년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올해 기준으로 타이베이시의 1인 가구는 약 30%이다. 1가구당 평균 세대원 수는 2.6명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타이베이시는 임대주택 보급과정에서 방 1개인 임대주택의 비중을 60%로 가장 많이 배정하고 30%는 방이 2개인 임대주택, 10%는 방이 3개인 임대주택으로 각각 채울 계획이다.
타이베이시는 임대주택 정책 수립 및 기관 설립에 관한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에 매년 공무원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 같은 정책 공조는 임대주택 외에 전자정부, 스마트시티 등 다른 도시정책 및 인프라 개발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린저우민 국장은 “서울이 타이베이보다 앞서는 대표적인 분야로 문화와 스마트시티가 있는데 이 외에 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두 나라·도시의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타이베이=글·사진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기사 작성일: 2015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