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_기획보도] 서울 도시정책 수출 현장을 가다. : 실시간 모니터링서 버스정보시스템까지… 실크로드 깔렸다
카스피해 인근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한 옛 소련 공화국이었던 아제르바이잔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국가다. 인천공항에서 가는 직항편도 없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은 최근 10년 사이 풍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내며 주목을 받고 있다. 몇년 사이 수도 바쿠에서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마천루들이 줄줄이 들어서는 등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제2의 두바이’라는 명칭까지 붙였다. 이 급격한 변화에 서울시의 ‘행정 한류’도 한 축을 담당했다. 바쿠의 도로 곳곳에서는 서울시와 같은 도로정보안내전광판과 CC(폐쇄회로)TV, 버스 출발·도착 안내서비스 시설 등을 발견할 수 있다. 2011년 SK (주)C&C가 바쿠에 서울시교통정보시스템(TOPIS) ‘이식’을 완료한 결과다. 아제르바이잔 교통사업 수출은 행정수출의 ‘실크로드’가 깔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처럼 만들어 달라”…대통령이 지목한 시스템
인구 960만명, 한반도 면적 40% 크기 영토의 아제르바이잔. 1991년 구소련에서 분리독립한 뒤 정치적인 혼란기가 잠시 있었지만 석유와 가스 수출이 급증하면서 2006∼2010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6.4%에 이를 만큼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경제가 살아나면서 많은 주민들이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바쿠로 몰려들면서 교통 정체라는 ‘도시병’이 함께 찾아왔다. 현재 총인구 48%가 바쿠와 인근에 몰려 있다. 1㎞의 거리를 가는 데 1시간씩 걸리는 것에 화가 난 버스기사는 노선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짜증도 극에 달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2006년 교통관리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교통관리시스템 구축방안’ 등이 입찰공고됐고 일본과 프랑스 등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1000억원이 넘는 이 프로젝트에 다른 국가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한국을 지목했다. 교통국에서 주아제르바이잔 한국대사관에 “사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보낸 것이다. 당시 서울시를 방문한 교통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서울교통시스템의 우수성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나미카 하사노프 교통부 홍보국장은 “정상회담차 한국을 다녀온 대통령은 콕 집어 한국의 시스템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해외 유력업체들을 제치고 한국기업 SK (주)C&C가 계약을 체결했다.
◆아제르바이잔 거점으로 구축되는 ‘실크로드’
바쿠시 지능형교통시스템(ITS) 도입은 2008년부터 2012년 말까지 진행됐다. 총 사업비만 1억3800만달러(약 1600억원)가 들어간 대규모 사업이다. 초기 교통량 측정과 상황감시시스템 설치에 중점을 뒀던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돌발상황 점검을 위한 CCTV 설치, 사고 등 우회로 안내, 불법 쓰레기투기 등 교통 유발자 단속 등으로 점점 확대해 갔다. 교통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SK (주)C&C의 설득에 하나씩 늘려간 것이다. 그 결과 바쿠시 전체 주요 간선도로와 도심도로, 공항간 도로에 ‘서울식 ITS’가 통째로 옮겨졌다.
차량 번호판을 자동인식해 구간 통행시간 및 속도, 교통량 등을 수집·분석하는 차량검지시스템과 실시간 교통상황 모니터링을 위한 CCTV가 설치됐고, 버스의 출발·도착 시스템을 알려주는 버스정보시스템(BIS)도 구축됐다. 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바쿠시 교통관제센터도 만들어졌다. 2008년 계약 당시 7000만달러 규모의 사업이 두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 완료 후 SK (주)C&C와 아제르바이잔 양쪽의 만족도는 모두 높았다.
하사노프 국장은 “바쿠도 이제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통시스템의 나라가 됐다”며 “한국에서 추가적으로 제안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듣고 싶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바쿠의 도로를 건설하고(울트라건설), 아제르수(수자원공사) 건물을 짓고(한라), 교통시스템을 구축(SK (주)C&C)한 것이 모두 한국 기업”이라며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은 형제의 나라”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또 “아제르바이잔과 터키, 조지아(옛 그루지아)를 연결하는 열차도 연말부터 운행될 것”이라며 “중국∼유럽 열차 연결을 위한 많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 한국과 좋은 협력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양석용 SK (주)C&C 해외사업부장은 “아제르바이잔에 도로명 사업을 추가적으로 진행했고, 카자흐스탄 우편물류정보와 투르크메니스탄 안전도시 건설 등도 수주했다”며 “아제르바이잔 ITS 구축사업은 향후 CIS 국가에 대한 거점을 확보했다는 차원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바쿠(아제르바이잔)=글·사진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