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_기획보도] 서울 도시정책 수출 현장을 가다: 서울시 '티머니형 카드'… 웰링턴 시민의 필수품 되다
지난달 27일 저녁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의 중심지 ‘램턴 키(Lambton Quay)’. 웰링턴 버스의 대부분이 집결하는 교통요지인 이곳에 일을 마친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가운데 버스를 타는 많은 시민들의 손에서 빨간색 카드 한 장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과 가방을 단말기에 접촉하고 버스에 승차하는 익숙한 광경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카드가 바로 웰링턴의 교통카드인 스내퍼(Snapper)다.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색이 인상적인 이 스내퍼카드의 모체가 바로 서울의 교통카드인 티머니다.
◆웰링턴 시민들의 삶에 깊숙이 파고든 서울의 교통카드
웰링턴은 서울시 교통시스템의 첫 해외진출지다. 2007년 웰링턴 버스의 70%를 운영하고 있는 ‘NZ버스’가 교통카드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서울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티머니를 도입했다. 여기에 웰링턴의 현실에 맞는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완성한 것이 스내퍼시스템이다. 이후 8년 동안 여섯 번의 개선을 거치면서 운영돼온 스내퍼카드는 이제 웰링턴 시민들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수도이자 제2의 도시이기는 하지만 인구는 35만명의 중규모 도시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지하철 등 대규모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버스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출퇴근시간에 버스 이용률이 가장 높은 도시도 바로 웰링턴이다. 이렇게 매일 버스를 사용하는 시민들에게 신속하게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스내퍼카드는 사실상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웰링턴에 발행된 스내퍼카드는 총 35만여장. 사실상 모든 웰링턴 시민들이 한 장씩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용 건수도 하루에 10만건에 달한다. 웰링턴 시민의 4분의 1이 적어도 하루 한 번은 이 교통카드를 사용한다. 버스 이외에도 스내퍼카드는 택시와 도시 내 케이블카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시 외곽 등에서 편리하게 버스로 환승할 수 있도록 공영주차장에서도 스내퍼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환경보호를 중시하는 뉴질랜드 정부와 웰링턴시는 대중교통 이용률을 더욱 높이기 위해 카드 사용 교통수단 확충도 계획 중이다. 특히 2017년에는 웰링턴 외곽을 연결하는 열차에 교통카드 적용을 추진 중이다. 세실리아 웨이드브라운 웰링턴 시장은 “웰링턴을 걷거나 버스를 타는 것을 더욱 일상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면서 “이미 정착된 교통카드시스템은 이를 위한 중요한 기반”이라고 밝혔다.
◆시스템 구축뿐만 아니라 정산대행까지 함께하는 ‘패키지 시스템’ 주목
주목할 만한 것은 이렇게 빈번히 사용되는 웰링턴 시민들의 교통카드 사용 데이터가 매일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버스 운행이 끝나면 요금 징수내역 및 승객들의 승하차 데이터가 집계서버를 통해 자동으로 인천 부평의 한국스마트카드 데이터센터로 전송된다. 이는 인구가 적은 웰링턴시가 교통카드 정산시설을 새로 짓는 대신 한국스마트카드에 정산을 대행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인구 1000만명 대도시의 대중교통을 매일 운영하는 서울시의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키 직사이 스내퍼 CEO는 “하루에 4000만건의 승하차 데이터를 처리하는 서울에 비해 웰링턴의 승하차 건수는 1년에 1200만건에 불과하다”면서 “새롭게 정산시설을 짓는 것보다 1만대 이상의 버스를 운영하며 입증된 안정된 서울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재가공된 웰링턴 버스의 승하차 데이터는 다시 스내퍼와 NZ버스 등에 보내진다. 마이크 스캇 NZ버스 CIO는 “한국으로부터 매일 정산자료가 스내퍼와 NZ버스로 온다”면서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선 재편 등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8년 동안 이어진 웰링턴에서의 성공적인 시스템 운용은 서울시 교통카드시스템의 해외진출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진출 등에도 웰링턴에서의 성공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최근에는 개발도상국 등을 중심으로 교통카드시스템을 구축한 후 정산까지 대행하는 ‘웰링턴 모델’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들이 크게 늘었다. 한국스마트카드의 한 관계자는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정산시설을 짓는 데에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선진국 수도인 웰링턴에서의 안정적인 시스템 운용과 정산 대행으로 이들 국가에서 서울의 교통카드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웰링턴에서의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한 유연성도 개발도상국 교통시장 진출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다. 2004년 설립된 지 불과 3년 만에 해외 진출에 도전한 한국스마트카드는 고객친화적이고 유연한 시스템을 무기로 까다로운 해외고객들을 끌어들였다.
직사이 CEO는 “버스 1만대 이상에 사용되며, 이미 충분히 입증됐음에도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개발과 발전을 해 나가는 것이 서울시 교통카드시스템의 장점”이라며 “최근에는 서울시의 기술을 기반으로 모바일앱 교통카드를 도입하는 등 계속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웰링턴(뉴질랜드)=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기사 작성일: 2015년 9월 7일